결핍 없이 정점에 오른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더 복서』를 읽으면서, 그 믿음이 이 작품이 가장 잘 다루고 있는 주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재능 만능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핍이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가장 서늘하게 그려낸 작품이었습니다.

결핍이 만들어낸 챔피언들
저는 장피에르라는 캐릭터에서 한참을 멈췄습니다. 10년 무패, 라이트급 재왕. 기술적 완성도 측면에서 현 복싱계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리치(reach)가 무려 2미터입니다. 여기서 리치란 두 팔을 양옆으로 쭉 뻗었을 때의 길이를 말하는데, 라이트급 평균 신장이 174cm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의 잽은 단순히 리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속도와 시너지를 이루면서 체감 사거리가 3미터에 육박한다는 묘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저를 붙잡은 건 그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장피에르의 완벽함 뒤에 깔린 심리였습니다.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저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무너지면 안 된다"는 감각이 몸에 박혀버린 사람이 어떤 식으로 자라나는지를. 완벽주의란 결국 어린 시절의 비명입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잽 하나하나의 정교함이, 사실은 "조금만 틀려도 끝이야"라는 아이의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느낌이 너무 선명하게 읽혔습니다.
유도 마찬가지입니다. 17살에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는 소년. 이 장면은 제가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오래 들여다본 장면입니다. 이름조차 주어진 적 없었던 사람이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서사, 그것이 단순한 천재 성장물로 읽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꾸 『더 글로리』의 문동은과 겹쳐 보였습니다. 학창 시절의 결핍이 원동력이 되어 어마어마한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구조가 같습니다. 그런데 그 끝에서 진짜 행복이 있는지는, 두 작품 모두 대답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능만능주의, 어디까지 동의하십니까
『더 복서』가 독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이유 중 하나는 "노력파들이 처참하게 무너진다"는 구조입니다. 이를 카타르시스로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압도적인 장면들에 흥분했거든요.
그런데 차갑게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결국 "재능 앞에 노력은 의미 없다"는 메시지에 굉장히 가깝게 서 있습니다. 스파링(sparring)이란 실전 감각을 익히기 위한 연습 경기를 말합니다. 유는 복싱을 시작한 지 2주 만에 슈퍼미들급 랭킹 3위 선수와의 스파링에서 이질감 넘치는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그 장면 자체는 압도적이지만, 저는 그 압도감 뒤에서 진지하게 연습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선한 뜻으로 이를 악물고 훈련하는 사람은 빛을 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픽션 안에서라면 "재능이 다야"라고 결론 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독자들의 현실 인식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누군가에겐 진짜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K의 복싱관도 저는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사람을 때리는 게 당연히 재밌다", "주먹만큼 명료한 게 없다"는 대사들은 작품의 핵심 철학처럼 기능합니다. 이를 캐릭터의 매력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거북했습니다. 폭력을 명료함으로 포장하는 방식은, 잘 따져보면 폭력에 대한 미화에 가깝습니다. 물론 픽션이라는 걸 압니다. 하지만 작품이 그 철학을 멋있게 다루는 톤 자체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더 복서』가 독자에게 던지는 핵심 질문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재능과 노력 중 무엇이 더 결정적인가
- 결핍이 사람을 강하게 만들 때, 그것은 구원인가 저주인가
- 폭력의 명료함이라는 논리를 우리는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 세 가지를 독자 각자가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같은 장면이 전혀 다르게 읽힙니다.
카심이 도망친 장면에서 저는 박수를 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카심의 링 이탈 장면을 우물 안 개구리의 추한 결말로 봅니다. 그런데 저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솔직히 제 경험상, 저 선택은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카운터펀치(counterpunch)란 상대의 공격에 맞춰 역이용하는 반격 기술을 말합니다. 유의 복싱은 이 카운터 계열의 움직임이 본능 수준으로 작동합니다. 훈련받은 복서들이 "시야가 따라잡지 못한다"고 할 정도의 속도와 궤적 변환입니다. 카심은 그 앞에 서서, 자신이 포식자가 아닌 피식자의 위치에 처음으로 놓였습니다. 그 공포 앞에서 링 밖으로 나간 겁니다.
저는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차원이 다르다는 걸 감지했을 때, 죽기 살기로 버티는 것만이 정답은 아닙니다. 살아서 돌아오는 것도 하나의 답입니다. 복싱 같은 격투 스포츠에서는 선수 보호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됩니다. 심판이 RSC(Referee Stops Contest), 즉 레프리가 선수 보호를 위해 경기를 중단시키는 제도가 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링 위에서의 용기는 죽음이 아니라 다음 라운드를 향한 선택에도 있습니다.
작화 측면에서는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펀치 한 방의 무게감, 인물들의 표정. 특히 K가 처음 유를 발견했을 때의 눈빛, 장피에르의 무표정 안에 스며든 긴장감은 작화가 아니었으면 절반도 전달되지 않았을 장면들입니다. 웹툰에서 동적인 장면을 정지 컷으로 전달하는 건 연출력의 문제인데, 이 작품은 그 부분에서 확실히 잘하고 있습니다. 격투 스포츠를 다루는 웹툰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독자의 몰입도는 캐릭터 표정과 타격 장면의 박력에 크게 좌우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편 유의 "귀찮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솔직히 작품 안 캐릭터를 향해 분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정말 잘 살아보려고 매일 이를 악물고 있는데, 그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하품을 합니다. 작가가 의도한 매력 포인트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매력보다 모독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 감정을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고, "그게 이 캐릭터의 핵심이다"라고 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독자가 어떤 감정을 갖는지가 각자의 현실과 연결돼 있다는 게, 저는 이 작품이 가진 힘이라고 봅니다.
또한 웹툰 산업 내에서 격투 스포츠 장르는 꾸준히 성장세를 보여왔습니다. 국내 웹툰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2조 원을 넘어섰으며, 스포츠·격투 장르가 그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장르 중 하나로 집계됩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작품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생각하게 됐습니다. 재능에 대한 질문, 결핍에 대한 질문, 그리고 폭력에 대한 질문. 이 세 가지를 독자 각자의 시각으로 직접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제가 느낀 것과 분명 다른 지점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