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다니다 보면 한 번씩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저 위에 있는 사람은 아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나 할까. 저도 그런 자리에 앉아본 적이 있고, 솔직히 위에 있을 때는 아래가 잘 안 보이더라고요. 스페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플랫폼은 그 감각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시각화한 작품입니다. 처음엔 그냥 자극적인 영화겠거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며칠을 곱씹었습니다.

수직 계급구조가 만드는 것들
더 플랫폼의 배경은 '홀(The Hole)'이라고 불리는 수직형 수용 시설입니다. 수직형 계급구조(Vertical Class Structure)란 말 그대로 위아래로 층이 나뉘고, 위층이 가진 자원이 아래층으로 흘러내려오는 구조를 말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 자원은 바로 음식입니다.
매일 한 번, 자기부상 플랫폼(Magnetic Levitation Platform)이 내려옵니다. 여기서 자기부상이란 전자기력을 이용해 물체를 공중에 띄운 채 이동시키는 기술로, 영화 속에서는 층과 층을 오가는 배식 장치로 등장합니다. 최상층에서 내려오는 음식의 양은 어마어마하지만, 위층 사람들이 먹고 남긴 것이 아래층으로 전달되는 방식이라 층이 내려갈수록 남는 게 없어집니다. 주인공 고렝이 처음 배정받은 곳은 지하 48층. 그 위로 94명이 먹다 남긴 음식이 도착하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자꾸 떠올린 건 어떤 가족 식사 자리였습니다. 제가 직접 겪은 건 아니고, 가까이서 지켜본 일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앉아 있어야 했던 사람. 위에서 정해준 자리에서 남겨진 것을 받아야 하는 상황. 저는 그때 뒤에서 몰래 챙겨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감옥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디스토피아(Dystopia) 장르로 분류되는 이 영화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구체화합니다. 디스토피아란 이상적인 사회를 뜻하는 유토피아(Utopia)의 반대 개념으로, 극도로 억압적이거나 비인간적인 사회를 그린 장르를 말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수평으로 달리는 열차 위에서 같은 이야기를 했다면, 더 플랫폼은 수직으로 파고든 공간에서 더 날카롭게 묻습니다. 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설국열차는 보고 나서 생각이 쌓이는 영화고, 더 플랫폼은 보는 순간 바로 와닿는 영화입니다. 취향으로 따지면 저는 곱씹게 만드는 편이 더 좋습니다만, 더 플랫폼이 전달하는 직접성은 그것대로 강렬합니다.
더 플랫폼에서 주목할 만한 사회적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층이 무작위로 재배정되므로 누구나 위층이 될 수도, 아래층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위층에 있을 때 탐욕을 보인 사람이 아래층에 떨어지면 무기력하게 당합니다
- 음식의 절대량은 전체가 생존 가능한 수준으로 설계되어 있지만,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시스템의 설계자조차 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연대의 한계, 그리고 트림 아가씨 같은 사람
이모그리라는 인물은 홀 안에서 합리적 분배(Rational Allocation)를 시도합니다. 합리적 분배란 한정된 자원을 구성원 모두가 최소한의 몫을 받을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나누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녀는 25년간 시설 직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고, 아래층 사람들에게 설득을 시도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습니다. 결국 고렝이 협박 방식으로 전환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연대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연대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이건 비관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어떤 자리든, 단합을 방해하는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더라고요. 영화 속 트림 아가씨처럼. 그녀가 나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 사람도 살아남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게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입니다. 악당이 따로 없습니다.
연대가 가능하려면 시스템 자체가 그것을 유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일부 동의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개념이 여기에 딱 들어맞습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할수록 공공 자원이 고갈되는 현상을 말하는데, 홀의 배식 시스템이 바로 이 구조입니다. 각자가 최대한 먹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합리적이지만, 전체로 보면 아래층이 굶어죽는 결과를 낳습니다. 개인의 도덕성에만 기댄 시스템이 왜 실패하는지, 이 영화는 아주 잔인하게 보여줍니다(출처: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 가지 더 떠오릅니다. 저에게 음식은 그냥 끼니가 아닙니다. 진짜 배고파 본 적이 있어서, 지금도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든든하게 챙겨먹는 일이 저한테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식사 장면 하나하나가 남들보다 더 묵직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릅니다.
333층과 어린아이, 숫자가 품은 메시지
영화의 마지막은 열린 결말입니다. 고렝과 바하라트는 음식을 분배하며 내려가다가 333층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미하루가 찾던 어린아이를 발견합니다. 두 사람이 플랫폼에서 내리자 플랫폼은 위가 아닌 아래,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숫자 상징(Numerical Symbolism)은 영화 전반에 촘촘하게 깔려 있습니다. 숫자 상징이란 특정 숫자에 종교적,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여 서사에 층위를 더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333층에 두 명씩이면 총 666명. 666은 대중적으로 악마의 숫자로 알려진 숫자입니다. 홀 자체가 지옥이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런데 333은 천사의 숫자로 불리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계획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기도 하지요.
저는 신앙이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제가 그 홀에 들어가야 한다면 성경책을 들고 갈 것 같습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생각했는데, 결국엔 사람을 사람답게 붙들어 주는 게 책 한 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렝이 책을 들고 들어간 것처럼. 가장 낮은 곳에 메시지가 있다는 해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제가 믿어온 이야기와 어딘가 닮아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자본주의 비판으로만 읽는 분들도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야기로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부터 잘못됐다고 콕 찍는 게 오히려 단순한 대답일 것 같습니다. 영화가 계속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건, 보는 사람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 중에서도 이렇게 오래 남는 영화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참고로 넷플릭스가 2023년 기준 전 세계 2억 38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사회 비판 영화가 플랫폼을 통해 얼마나 넓게 퍼질 수 있는지도 생각해볼 거리입니다(출처: Netflix Investor Relations).
사실 만약 제가 위층에 배정된다면, 솔직히 말해서 누릴 것 같습니다. 다만 너무 과하지 않게, 아래층에 피해가 가지 않을 만큼만 먹고 싶다는 바람은 있습니다. 그게 가능할지는 자신 없습니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결국 더 플랫폼은 시스템 문제인가 인간 문제인가를 묻는 영화지만,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장면들이 있어서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지만, 그 불편함을 견딜 수 있다면 한 번쯤 볼 만합니다. 보고 나서 아무 생각이 안 드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