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손이 멈춘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경험이 꽤 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도 그랬습니다.
예고편만 세 번쯤 돌려봤는데 끝내 재생을 못 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1970년대를 소환하는 방식, 일반적 믿음과 다른 점
일반적으로 시대극이라고 하면 복원 고증에 공을 들인 묵직한 드라마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메이드 인 코리아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설계된 작품입니다. 1970년 실제로 발생한 요도호 납치 사건(よど号ハイジャック事件)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서 요도호 납치 사건이란 일본 적군파가 민간 여객기를 공중 납치해 북한으로 향하려 한 실제 사건으로, 탑승객과 승무원 138명이 인질로 잡혔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팩션(Faction)의 형태로 재구성했습니다. 팩션이란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을 결합한 장르로, 실제 사건의 골격 위에 가상의 인물과 서사를 얹는 방식입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 한국 중앙정보부, 그리고 정체불명의 비즈니스맨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충돌하는 구도입니다. 제가 요약 영상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서울 관제소가 평양 관제소인 척 무전을 쳐서 납치된 항공기를 김포공항으로 유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기만 작전이 펼쳐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소설보다 드라마틱합니다.
당시 하이재킹(Hijacking), 즉 항공기 납치에 대한 보안 매뉴얼이 전무하던 시절이었다는 점도 작품의 핵심 배경입니다. 탑승 전 보안 검색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무장한 납치범들이 그대로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 사건은 일본이 항공 보안 검색 제도를 도입하고 하이재킹 방지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출처: 일본 국립공문서관).
왜 한국은 이 장르를 계속 만드는가
메이드 인 코리아는 서울의봄 제작진과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손을 잡고 디즈니 플러스가 텐트폴(Tentpole) 제작비를 투입한 작품입니다. 텐트폴이란 마치 텐트를 지지하는 기둥처럼 스트리밍 플랫폼 전체의 흥행을 견인하는 대형 프로젝트를 가리킵니다. 현빈, 정우성, 조여정 등 주조연 캐스팅만 봐도 제작사가 어느 수준의 무게를 두고 만들었는지 가늠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작품이 흥행하면 "통쾌하다", "카타르시스가 있다"는 말이 따라옵니다. 저는 그 말에 반쯤만 동의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부당한 명령이 하달되고, 윗선이 모든 것을 도청하며, 내 정보가 몰래 수집되는 그 공기가 저에게는 픽션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부당한 일에 대해 침묵해야만 했던 구조 속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부자들도, 남산의 부장들도 제 손이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역시 보지 않은 게 아니라 볼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그러면서도 의문은 남습니다. 왜 한국 콘텐츠 시장은 이 서사를 반복해서 소환할까요. 콘텐츠 산업 분야에서는 이를 문화적 트라우마 재현(Cultural Trauma Represent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문화적 트라우마 재현이란 특정 사회가 집단적으로 경험한 폭력이나 억압을 서사 예술로 반복 재현하며 정서적으로 처리하려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정권, 중앙정보부, 조직폭력은 단순한 역사적 소재가 아니라 아직 다 소화되지 않은 집단 경험입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담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실제 역사 사건(요도호 납치)을 팩션으로 재구성한 서사 구조
- 중앙정보부의 도청과 공작이라는 권력 작동 방식의 묘사
- 조직폭력과 검찰, 정보기관이 얽히는 70년대 부산의 권력 지형
- 텐트폴급 캐스팅과 대형 제작비를 통한 OTT 경쟁력 강화 전략
이 네 가지가 하나로 묶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흥행작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관객이 열광하는 이유, 스크린이 대신 해주는 것
2024년 기준 한국의 OTT(Over The Top) 이용률은 전 국민의 70%를 넘겼습니다. OTT란 인터넷을 통해 영화, 드라마 등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서비스 전반을 가리킵니다. 디즈니 플러스가 메이드 인 코리아에 텐트폴 예산을 쏟아부은 것도 이 시장을 겨냥한 전략으로 보입니다(출처: 방송통신위원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울의봄이나 내부자들이 흥행했을 때, 주변에서 "통쾌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는 그게 통쾌함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스크린 안에서 누군가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도청을 역이용하고, 부조리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순간에 박수를 치는 건, 우리가 현실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직장에서, 가족 안에서, 학교에서 우리는 여전히 부당함을 부당하다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70년대의 중앙정보부와 조직폭력은 형태만 바꿨을 뿐, 2025년에도 상사와 갑과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있습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또 한 번 흥행한다면, 그것은 작품이 완성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구조가 아직도 우리의 현실이라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어떤 작품인지는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들, 저처럼 손이 선뜻 가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왜 지금 만들어졌는지, 왜 이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는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고 나서가 아니라, 보기 전에 그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