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억울하게 당했는데 법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장면을 보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개봉 직후 지인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화 「모범시민」은, 보고 나서도 한참 동안 찝찝한 감정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통쾌하다고 말하기엔 뭔가 찜찜하고, 그렇다고 불편하다고 잘라 말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한 가정의 비극, 그리고 무너진 정의
영화는 처음부터 거칠게 시작합니다. 두 명의 강도가 평범한 가정에 침입해 아내와 딸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살해하는 장면이 도입부에 등장합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느낀 건,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미 영화 전체의 무게가 정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직도 그 첫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습니다.
범인들은 잡혔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흘러가는 방향이 이상해집니다. 사건을 맡은 검사는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대신,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이라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여기서 플리 바기닝이란 검사와 피의자가 협상을 통해 피의자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신 형량을 낮춰주는 미국 형사 사법 절차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재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진범의 죄를 절충하는 거래입니다.
결과적으로 실제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대폭 감형을 받고, 다른 공범만 사형에 처해집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진심으로 화가 났습니다. 합의라니, 아내와 딸을 잃은 사람 앞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제가 주인공 자리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혔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리는 핵심은 바로 미국의 적법 절차(Due Process) 원칙입니다. 적법 절차란 법이 정한 방식과 형식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원칙으로, 아무리 진실이 명백하더라도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증거가 배제되거나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원칙이 정의를 지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의를 막는 방패막이가 되는 것인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끝없이 던집니다.
암살 전문가의 반격, 그리고 사법 시스템의 허점
10년이 흐릅니다. 죄를 혼자 뒤집어쓰고 사형 집행을 앞둔 공범. 그런데 그 집행 방식이 심상치 않습니다. 일반적인 약물 투여와는 달리,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처형이 이뤄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바로 그 뒤에 있었습니다.
이때 영화는 반전 카드를 꺼냅니다. 평범한 피해자처럼 보였던 주인공이 사실은 특수 작전을 설계하는 암살 전문가였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기서 제가 느낀 건,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남자는 시스템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법의 언어로 법을 농락하기 시작합니다.
검사를 상대로 말장난 같은 협상을 벌이는 장면은 솔직히 통쾌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스테이크를 요구하는 장면은 우습기도 했지만, 동시에 씁쓸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모범시민」이 비판하는 건 단 하나가 아닙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플리 바기닝을 통한 진범 감형: 피해자 가족의 의사와 무관하게 진행되는 협상 구조
- 증거 재판주의(Evidence-Based Trial): 판사와 배심원이 오직 증명 가능한 증거만으로 판단하는 원칙이라, 진실이 명백해도 증거가 없으면 무력화되는 구조
- 법조계의 자기 보호 논리: 판사, 검사, 변호사가 서로 얽혀 있는 구조적 유착
증거 재판주의란 감정이나 정황이 아닌, 객관적으로 제출된 증거만을 판결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 자체는 무고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장치이지만, 역설적으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미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연방 형사 사건의 약 97%가 플리 바기닝으로 마무리된다고 합니다(출처: 미국 법무부). 재판 없이 협상으로 끝나는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 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이 됩니다.
결말이 남긴 찝찝함, 그리고 비슷한 영화와의 비교
결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자신이 독방 안에 설치해 놓은 폭탄과 함께 생을 마감합니다. 검사가 기폭 장치를 제거해 독방으로 옮겨 놓은 결과입니다. 완전한 복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한 사람이, 그 결말이라니.
시나리오 구조로 보면, 이 결말은 피루엣 엔딩(Pyrrhic Ending)에 가깝습니다. 피루엣 엔딩이란 주인공이 목표를 일부 달성하지만 그 대가로 자신도 파멸하는 서사 구조로, 승리인지 패배인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결말입니다. 감독은 주인공을 영웅으로도, 악인으로도 규정하지 않은 채 관객에게 판단을 맡깁니다. 그 의도 자체는 이해하지만, 솔직히 제 경험상 이런 결말은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찝찝함의 원인이 됩니다.
비슷한 결의 작품으로 일본 영화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가 떠오릅니다.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린 남자가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지만 유죄 판결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독백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제 경험상 그 영화와 비교하면 「모범시민」은 카타르시스는 있지만 깊이는 한 단계 아래에 있다고 봅니다. 시스템을 고발하는 방식이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어」 쪽이 훨씬 더 날카롭고 조용한 방식으로 찌릅니다.
미국 법학자 제프리 로젠은 저서에서 "플리 바기닝 시스템은 가난하고 법률 지식이 없는 피의자에게 가장 불리하게 작동한다"고 지적했습니다(출처: The Atlantic). 「모범시민」은 그 반대편, 즉 피해자 가족의 자리에서 같은 시스템을 들여다봅니다. 그 시각 자체가 이 영화가 단순한 액션 복수극 그 이상인 이유입니다.
결국 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하자면, 결말이 아주 찝찝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그 찝찝함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법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질 때 사람이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시거나, 사법 시스템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한 번쯤 보시길 권합니다. 단, 불편함을 감수할 준비는 하고 보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