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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 재조명 (비하인드, 각본 분석, 현재성)

by hhyun19 2026. 5. 13.

OCN에서 재방송으로 우연히 틀었던 건지, 그 유명한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아요" 한 마디 때문에 직접 찾아본 건지, 솔직히 이제는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어쨌든 혼자 봤고, 다 보고 나서 꽤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던 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이 영화는 그냥 재밌는 범죄물이 아니었습니다.

부당거래 비하인드, 알고 보면 더 무겁다

2010년 개봉한 부당거래는 연쇄살인범을 잡지 못해 여론이 들끓는 상황에서, 경찰이 범인을 조작해 여론을 무마하려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각본은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 마녀 시리즈로 이어지는 박훈정 감독이 썼고, 연출은 류승완 감독이 맡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각본이 이렇게 단단한 줄 몰랐는데, 비하인드를 따로 챙겨보고 나서야 이게 박훈정 각본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진짜로요.

비하인드를 알고 나니 장면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더군요. 예를 들어 부산 쓰레기 소각장 촬영 씬이 있는데, 실제 소각장에서 찍은 탓에 가스와 악취가 너무 심해 마스크를 쓴 스태프들도 구토를 했고, 조감독은 다음날 병원에 실려 갔다고 합니다. 배우 예진은 눈이 부을 정도로 자극을 받으면서도 한 번도 촬영장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고 하고요. 그 장면을 보면서 그냥 배우들이 연기를 잘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 자체가 이미 지옥이었던 겁니다.

로케이션 촬영의 비중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로케이션 촬영이란 세트가 아닌 실제 장소에서 진행하는 촬영 방식으로, 현실감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조건을 통제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영화 속 취조실은 미술팀이 별도로 세트를 제작했고, 대전 시청, 교보 빌딩 옥상, 전주의 빈 건물, 남양주 카페 등 전국 각지를 누빈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교보 빌딩 옥상 씬은 청와대가 보이는 위치라 경찰 입회 하에 진행해야 했고 10시 철수 제한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제작 비하인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부산 소각장 씬: 실제 악취와 가스로 스태프 구토, 조감독 병원 후송
  • 교보 빌딩 옥상 씬: 청와대 조망으로 경찰 입회 필수, 10시 이후 촬영 불가
  • 여의도 추격 씬: 올림픽대로를 3번 반복 왕복, 왕복 1회에 40분 소요
  • 올림픽대로 장면 삽입 전, 배경 건물 전원 소등 사고로 감독 극대노

이 정도 고생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화면의 리얼함이 그냥 얻어진 게 아니라는 게 납득됩니다.

각본 분석, 박훈정 세계관의 핵심 문법

제가 박훈정 감독 작품을 꽤 여러 편 봤습니다. 악마를 보았다, 신세계, 마녀까지 전부 여러 번 돌려본 영화들인데, 특히 신세계는 100번도 넘게 봤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부당거래 비하인드를 보면서 이 영화도 박훈정 각본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퍼즐 조각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신세계의 이정재가 가졌던 그 내면의 갈등, 악마를 보았다의 끝없이 추락하는 인간 군상, 그게 부당거래에도 그대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박훈정 각본의 문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로, 이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이 어떻게 변화하거나 파괴되는지를 추적하는 서사 구조를 말합니다. 최철기는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승진을 원했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 욕망이 조금씩 그를 다른 존재로 만들었고, 결국 자기를 진심으로 따르던 사람을 직접 죽이는 지점까지 갑니다. 그 장면이 저한테는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황정민이 마동석을 죽이는 그 장면,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의 활용입니다. 도덕적 모호성이란 선과 악을 단순하게 구분하지 않고, 인물의 행동 동기와 맥락을 함께 제시해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서사 기법입니다. 범인으로 조작된 이동석이 알고 보니 진짜 범인이었다는 반전이 대표적입니다. 이 설정이 영화의 무게를 한 단계 끌어올립니다. 조작된 누명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마동석이라는 소중한 사람이 희생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주양과 최철기 모두 살아남아 과거를 덮고 잘 먹고 잘 사는 결말이었다고 합니다. 류승완 감독이 "나쁜 놈들이 처벌받는 것까지"를 각색 방향으로 잡으면서 지금의 결말이 나왔다고 하는데, 저는 이 선택이 맞았다고 봅니다. 그대로 뒀으면 영화가 너무 허무했을 것 같습니다. 나쁜 놈들이 벌을 받아야 스크린 밖으로 나와서도 숨을 쉴 수 있으니까요.

현재성, 15년이 지나도 이 영화가 유효한 이유

"여러 가지 법 안 지키는 새끼들이 더 잘 먹고 잘 살아." 이 대사에 솔직히 동의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을 보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가 2010년 개봉작인데, 지금 봐도 메시지가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마약사범이 공항에서 잡혔을 때 기자들한테 반말로 찍찍거리면서 실실 웃는 장면이 뉴스로 나왔는데, 그 얼굴을 보면서 부당거래가 떠올랐습니다. 15년 가까이 지나도 풍경이 그대로라는 게 씁쓸했습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단순한 결과론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철기와 주양 중 누가 더 나쁜가를 두고 종종 생각해 봤는데, 사람을 직접 죽인 최철기가 더 악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일의 씨앗은 주양의 욕망과 미움에서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영화 비평 이론 중 도상 분석(iconographic analysis)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화면 속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인물의 내면 상태나 주제를 읽어내는 방법론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주양이 등장하는 장면의 조명과 구도는 시종일관 그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에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움과 권력의 결합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화면이 이미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법치주의의 본래 기능은 권력을 가진 자가 법을 주무르는 것을 막는 데 있습니다. 법치주의(rule of law)란 개인과 권력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게 적용받는 원칙을 말하며, 이는 국가 공권력의 남용을 통제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최철기와 주양이 하는 짓은 정확히 이 원칙을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영화입니다(출처: 법무부).

류승범의 연기도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제가 류승범 연기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건 용서는 없다를 통해서인데, 그 영화는 돌려볼수록 진가가 드러납니다. 인물의 처지를 다 알고 나서 연기를 다시 보면 "아, 이래서 저렇게 했구나"가 보입니다. 부당거래에서도 주향 역의 류승범은 첫 촬영부터 인물을 완성된 상태로 들고 오지 않고, 캐릭터를 쌓아가는 과정을 연기 속에 담았다고 합니다. 한국 영화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부당거래는 당시 47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부당거래는 박훈정의 각본이 가진 단단함과 류승완의 연출이 잘 맞물린 결과물입니다. 어느 한쪽의 공이 더 크다고 말하기보다, 두 사람의 작업이 서로를 살리면서 완성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쯤 처음부터 다시 보시길 권합니다. 단, 보고 나서 한참은 뭔가 씁쓸한 기분이 남을 것이라는 건 미리 말씀드립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KYAjKB2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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