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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포성의 기억, 교전수칙, 군인처우)

by hhyun19 2026. 5. 13.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호정이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을 받아 6명의 장병이 전사했습니다. 그날의 포성을 저는 뉴스로도 제대로 접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한 편을 통해 뒤늦게 그 사실을 마주했을 때, 솔직히 부끄러움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포성의 기억 — 그날 참수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제2연평해전을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당시 13살이었고, 사실 그 이름조차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이거 실제 있었던 일이야"라는 말을 듣고서야 찾아보게 됐으니까요.

제2연평해전은 2002년 FIFA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던 날, 온 국민이 축구에 집중하는 사이에 벌어진 실제 교전입니다. 북한 경비정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하여 아군 고속정에 선제 포격을 가했고, 참수리 357호정이 집중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기서 NLL이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유엔군 사령부가 설정한 해상 경계선으로, 서해 5도를 포함한 서해 북부 해역의 실질적인 분계선 역할을 합니다. 영화에서도 이 NLL을 사이에 두고 북한 선박과 대치하는 장면이 긴장감 있게 묘사됩니다.

영화 속에서 정장(함장) 윤영하 대위는 부임 첫날부터 대원 한 명 한 명을 가족처럼 챙깁니다. 한 하사가 신병 박동혁을 어머니 댁 식사에 데려가는 장면은 제가 직접 보면서 너무 따뜻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분들이 곧 전사할 것을 알기 때문이었겠죠. 영화가 끝난 뒤 전사자 6명의 나이를 찾아봤습니다. 가장 어린 분은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그 숫자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조타륜에 손을 묶고 배를 지킨 분의 모습은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조타륜이란 선박의 방향을 조종하는 핸들로, 항해 중 가장 중요한 위치에 해당합니다. 포격으로 쓰러지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단순한 용기를 넘어선 무언가로 느껴졌습니다.

교전수칙 — 맞고 나서야 쏠 수 있다는 것의 의미

영화를 보면서 가장 답답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딱 봐도 어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대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 선박을 그냥 돌려보내는 장면입니다. 영화 속 대화를 보면 당시 현장 지휘관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가능한 충돌하지 말라"는 상부 지시에 따라 선박을 풀어줬습니다. 물론 현장 군인의 입장에서 월권을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그 장면에서 화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선제 공격 금지"라는 교전수칙(ROE)입니다. 여기서 ROE(Rules of Engagement)란 군대가 교전을 시작하거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한계를 규정한 지침으로, 쉽게 말해 "어떤 상황에서 먼저 쏠 수 있는가"를 정해놓은 규칙입니다. 당시 우리 해군은 이 ROE에 따라 북한 경비정이 먼저 포격을 가해오기 전까지는 사격 개시 명령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압니다. 교전수칙이 왜 그렇게 설계되었는지, 당시 남북 관계와 정책적 맥락이 어떠했는지는 별도로 공부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도 속이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위협이 명확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도 먼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현장에서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얼마나 고통스러운 제약이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제2연평해전의 교훈은 이후 우리 군의 교전수칙 개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군은 적의 도발 징후가 명확할 경우 선제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교전수칙을 일부 수정했습니다(출처: 합동참모본부). 늦었지만, 그래도 변화가 있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인처우 — 이 나라는 군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대한민국은 군인을 제대로 예우하고 있는 걸까요?

미국의 경우 전상자(combat veteran), 즉 실전 교전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와 보훈 체계가 매우 촘촘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전상자란 직접적인 전투 행위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군인을 의미하며, 미국에서는 이들을 위한 전담 의료 시스템과 취업·교육 지원 제도가 별도로 운영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보훈 체계는 아직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군인 처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몇 가지 있습니다.

  • 연평해전 전사자들의 유족 지원이 한동안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 2023년 해병대 채 상병 사건에서, 임무 수행 중 순직한 병사를 둘러싼 책임 소재 논란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 군 복무 기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국가가 충분한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공익으로 군 복무를 마쳤습니다. 현역으로 복무한 분들과 경험이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목숨을 걸고 국경을 지킨 분들의 희생이 '당연한 것'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부른 청년이 임무 중 목숨을 잃었을 때, 그 책임을 국가가 끝까지 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입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가유공자 및 보훈 대상자는 약 85만 명으로 집계되며, 이 중 전몰·순직군경과 그 유족에 대한 보상 체계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습니다(출처: 국가보훈부). 하지만 제도적 개선과 실제 현장에서의 체감 사이에는 아직 간극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연평해전이 있었던 2002년을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아직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영화를 봤다는 것, 그리고 이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런 역사는 절대 잊혀서는 안 됩니다. 604만 명이 봤다고 하지만,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그리고 이분들의 이름이 단순한 숫자로 기록되지 않도록 — 기억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Zba6pVy1lw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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