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풍수지리를 완전히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모든 것은 결국 그분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영화 「명당」을 보고 나서 이 주제를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조선 후기 권력 다툼과 풍수지리가 이렇게 맞닿아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요.

조선 세도정치와 풍수지리가 맞닿은 지점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勢道政治)를 먼저 짚어야 합니다. 세도정치란 특정 외척 가문이 왕권을 압도하고 국정 전반을 좌우하던 정치 형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왕이 있어도 실제 권력은 다른 가문이 쥐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화 속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김 대감이 바로 그 자리에 있습니다. 헌종의 생일 자리에 모든 대신들이 모여 있을 때, 왕은 정전에 홀로 있었다는 장면이 그 구조를 단번에 보여줍니다.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풍수지리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었습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가 요절한 후, 그의 묘자리를 두고 관료들 사이에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용혈사격(龍穴砂格)이라는 풍수 개념이 등장합니다. 용혈사격이란 산줄기(용)가 혈(묘 자리)로 이어지고, 주변의 사격(四格, 산과 물의 형세)이 이를 감싸야 좋은 땅이 된다는 풍수지리의 핵심 원리입니다. 박재상이 "수맥이 시신을 차갑게 하고, 뱀의 형상을 한 뒤 볏이 새 백을 눌러 숨을 못 쉬게 하는 형국"이라며 반대한 것이 바로 이 기준에서 나온 판단입니다.
제가 직접 왕릉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어느 왕의 능이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능 주변에 들어섰을 때 공기가 묘하게 달랐습니다. 정돈된 소나무 숲, 낮고 완만한 산세, 앞이 탁 트인 배치.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이 바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배치였습니다. 배산임수란 뒤로는 산이 막아주고 앞으로는 물이 흐르는 지형 구조로, 풍수지리에서 명당의 기본 조건으로 꼽히는 개념입니다. 이걸 몸으로 먼저 느끼고, 나중에 이름을 붙이게 된 셈입니다.
권력과 명당, 어디까지 희생시키는가
영화에서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두 가지를 고릅니다. 하나는 박재상이 "여기는 흉지입니다"라고 바른말 한 마디 한 죄로 가족 전체를 잃는 장면입니다. 아내와 어린 자식까지. 다른 하나는 김 대감이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그 땅에 살던 농민들을 강제로 쫓아내는 장면입니다. 권력을 위해 이 정도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보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풍수지리를 이용한 권력 다툼은 역사적으로도 실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왕릉 선정 과정에서 관료들 사이에 풍수 논쟁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사례가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영화가 픽션과 역사 사실을 절묘하게 섞었다고는 하지만, 이 기반이 완전히 허구는 아닌 셈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두 번째로 주목한 것은 백윤식이라는 배우의 대조였습니다. 영화 「관상」에서의 백윤식과 「명당」에서의 백윤식, 두 인물이 가진 벼슬이 공교롭게도 같습니다. 좌의정. 그런데 한 인물은 나라를 위해 바른 판단을 하고, 다른 인물은 오직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위해 움직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앉는 사람이 자리의 의미를 결정한다는 것을 두 작품을 함께 놓고 보면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흥선군이 어떤 인물인지를 분석할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흥선은 살아남기 위해 개 흉내를 내며 스스로를 낮췄고, 그 덕에 김 대감의 경계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을 보면서 성경 속 다윗이 떠올랐습니다. 다윗도 쫓기는 처지에서 미친 사람 흉내를 내며 목숨을 건진 적이 있거든요.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는 점에서는 두 인물이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 됐고, 흥선은 결국 동료를 배신하고 자신의 야망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같은 위기에서 같은 방법으로 살아남았어도, 그 이후를 어떻게 사느냐가 두 사람의 결말을 갈라놓았습니다.
영화가 풍수지리에 부동산 투기, 학군, 상권 분석까지 엮어낸 방식도 저는 억지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욕망이 작동했다는 게 묘하게 설득력 있었습니다. 문제는 풍수지리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맹신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풍수지리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저는 지금도 부동산을 볼 때 풍수 전문가를 따로 부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는 반드시 확인합니다. 햇빛이 잘 드는지, 남향인지, 그리고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느낌입니다. 예전에 영등포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첫날 밤에 이유 없이 음산하고 무서웠습니다. 결국 찬송가를 틀어놓고 잤습니다. 그때 집이라는 공간이 사람의 기운에 이렇게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실감했습니다.
풍수지리를 어느 정도 참고할 만하다고 보는 입장에서, 실제로 주거 환경을 선택할 때 점검해볼 만한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조량과 향(向): 남향이 기본이며, 하루 중 햇빛이 실내에 충분히 드는지 확인합니다.
- 지형과 수맥: 저지대나 과거 하천 부지였던 곳은 습기와 수맥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주변 산세와 개방성: 뒤가 막히고 앞이 트인 배산임수 구조는 환기와 조망 모두에서 유리합니다.
- 첫 인상과 기운: 이것은 주관적이지만, 제 경험상 이 느낌이 가장 정직합니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주택 선택 시 채광과 일조를 중요 요소로 꼽은 응답자 비율이 지속적으로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풍수지리라는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좋은 터의 조건을 감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 속 박재상이 시장 컨설팅을 하는 장면도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동선을 유도하고, 감각을 자극하는 자리에 화려한 것을 두고, 냄새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방식. 이것은 오늘날의 상업 공간 기획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원리입니다. 풍수지리의 언어가 달라졌을 뿐, 좋은 기운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려는 사람의 욕구는 시대를 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 「명당」이 마지막에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땅에 묻히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좋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 먼저라는 것.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이 자부심을 갖고 사는 것은 묫자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분이 살아계실 때 위대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풍수지리를 어느 정도 믿는 저에게도, 이 결론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저도 죽어서 묻힐 자리보다, 살아서 남길 자부심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으니까요.